목록2021/11/22 (4)
무자기한
사이온지 긴모치(1849년 12월 7일 ~ 1940년 11월 24일)는 일본의 정치가로 1906년부터 1908년까지,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일본 총리를 역임했고 1920년 후작에서 황태자로 승위하게 되었는데 일본 겐로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정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냈다고 전해집니다. 유년기 도쿠다이지 킨히토의 아들로 태어나 1851년 사이온지 가문에 입양되는데 두 가문 모두 교토 황궁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친부모 근처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훗날 메이지 천황이 된 왕자의 소꿉놀이 친구로서 궁궐을 방문하라는 명령을 자주 받았고 훗날 이들은 가까운 친구가 됩니다. 친형제인 도쿠다이지 사네츠네는 나중에 일본의 추밀원 구성원이 되었고 ..
가고시마 사츠마 지방에서 태어난 마츠카타 (1835년 2월 25일 ~ 1924년 7월 2일)는 일찍부터 서양 학문을 공부했고 재무적 행정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일본의 5대 총리로서 부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총리 시절 ‘블랙 오션 소사이어티’라는 특정 유력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전해지지만 많은 업적이 알려져 있습니다. 유년기 가고시마, 사츠마 지방 (현재의 가고시마 현)의 한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나 13세에 사쓰마번의 유학자인 조시칸에 들어가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왕양명의 가르침을 배웠으며 사쓰마번의 관료로서 경력을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1866년 나가사키로 보내져 서양 과학, 수학, 측량을 공부하면서 가고시마 현의 영주부의 오쿠보 도시미치와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높이 평가되었으며, ..
일본의 세 번째 총리이자 군국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1838년 6월 14일 - 1922년 2월)는 메이지 시대 후반 야마가타는 국가 정책에 대한 권력을 놓고 이토 히로부미와 경쟁했는데 1909년 이토가 암살된 후, 천황을 제외하고 일본에서 가장 높은 인물이 되었고 이후 야마가타 왕자는 황실과의 불화로 1922년 2월 사망하기 직전에 권력을 잃을 때까지 제국 내의 모든 정책 결정을 감독했다고 전해집니다. 개인 생활과 취미 야마가타 왕자는 재능 있는 정원 디자이너였으며 오늘날까지 그가 디자인한 정원은 일본 정원의 걸작으로 간주되고 이는 교토에 있습니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큰누나의 아들인 조카를 양아들 겸 후계자로 삼았는데 이 사람이 야마가타 이사부로로 직업 관료, 내각 장관 및 한국의..
헨리 펠햄(1694년 9월 25일 ~ 1754년 3월 6일)은 조지 2세 때 재임한 영국의 세 번째 총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총리를 맡기 전 1721년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이때 최초의 총리인 월폴 백작이 제안한 소비세 문제에 대한 지지로 명성을 얻었고 2대인 월밍턴 백작의 후임으로 약 10년간 수상으로 부임하였다고 합니다. 외교적으로는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지향했던 월폴의 외교관을 따랐으며 경제적으로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후 재정 정책이 크게 성공해 세금을 줄임과 동시에 정부지출을 긴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장 과정 4대 수상인 뉴캐슬 공작의 남동생인 펠햄은 토마스 펠햄과 그레이스 펠햄 사이의 작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킹스 칼리지, 캠브리지, 하트 홀 및 옥스퍼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