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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총리, 줄리아노 아마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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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총리, 줄리아노 아마토

무자기한 2021. 11. 23. 16:31

줄리아노 아마토 (1938년 5월 13일 ~)는 이탈리아 정치인으로 1992년부터 1993년까지, 그리고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두 차례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했는데 유럽 ​​헌법 초안을 작성하고 아마토 그룹이 이끌었던 유럽 미래 협약의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Dottor Sottile’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스코틀랜드 중세 철학자 존 둔스 스코투스의 별명인 ‘Doctor Subtilis’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치적 미묘함에 연관된 별명이라고 합니다. 2013년 9월부터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했고 2020년 9월부터는 법원 부통령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전기

시칠리아 가정에서 태어난 아마토는 토스카나에서 자랐는데 1960년에 피사 대학교에서 법학 1급 학위를 받았고, 콜럼비아 법학 학교에서 비교법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3년 졸업 이후 모데나, 페루자, 플로렌스 대학교 등에서 강의한 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이탈리아 및 비교 헌법 교수로 1975년부터 1997년까지 재직하게 됩니다. 1958년 이탈리아 사회당에 가입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는데 1983년부터 1993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이 시기 중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총리실 국무차관,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부총리,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재무장관을 맡게 됩니다. 1992년 6월부터 1993년 4월까지 총리를 역임했는데 그 10개월 동안 일련의 부패 스캔들이 이탈리아를 뒤흔들었고 정치 지도자의 거의 모든 계층을 휩쓸었는데 부패의 중심인물인 베티노 크랙시와 굉장히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연루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상으로서 재정 적자를 대폭 삭감했고 두 번의 리라 평가절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정부는 정부에 의해 직접 통제되고, 독립적이지 않았을 경찰의 손에 부패 수사 권한을 갑자기 이양하는 법령을 추진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이 정치적 부패에 대한 조사들을 차단할 것을 두려워한 이탈리아인들은 대규모 자발적 집회를 통해 거리로 나서게 되었고 대통령인 오스카 루이지 스칼파로는 이 법령이 명백히 위헌이라고 판단해 서명을 거부하게 됩니다. 이후 조반니 콘소 법무부 장관이 책임을 물었지만, 아마토가 상황의 희생자인지 아니면 부패에 휩싸인 체제를 정말로 추구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총리 임기 말에 의회 연설에서 임기가 끝나면 정계에서 물러나겠다고 엄숙히 약속하고 자신의 진정한 약속이며 이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지만 이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고 이러한 이유로 정기적으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마시모 달레마의 첫 번째 정부에서 1998년 10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제도 개혁 장관, 그리고 달레마의 두 번째 정부에서 다시 한번 재무 장관을 역임했었고 1999년 12월부터 2000년 4월까지 공화국 대통령 후보로도 거의 지명되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미쉘 캄데수스를 대체할 유력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2000년 4월부터 2001년 5월까지 다시 총리를 역임했는데 이때 경제 경쟁력과 사회 보장을 추진했으며 경제 개혁과 더불어 정치, 제도적 개혁을 추진해 약해진 행정부와 분열된 입법부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토스카나의 그로세토 지역구를 대표하는 상원 의원이었고 2006년에는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로마노 프로디의 중도 좌파에서 내무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합니다. 2013년 9월 12일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그를 이탈리아 헌법재판소 판사로 임명했으며 그 이후로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20년 9월 16일 헌법재판소 의장직에 출마했지만 2차 투표에서 낙선합니다. 가족으로는 로마 대학의 가정법 교수인 디아나 빈센지와 결혼했는데 엘리사와 로렌초라는 두 자녀와 다섯 명의 손자가 있습니다. 또한 2012년에는 산타나 고급 연구학교의 총장으로 임명되는데 2013년 9월 헌법재판소에 임명된 후 산타나 고등대학원에서 사임하게 됩니다.

개인적인 관점

2011년 그는 이탈리아의 창의성이 공공 및 민간 기관 조직의 적절한 효율성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는데 그것이 미래의 잃어버린 희망과 공동의 국가 정체성의 의미에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본질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아직 전체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손실은 외국인 혐오증과 지역적 정체성이 좀 더 강화되는 데 영향을 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토는 1861년 이후 이탈리아 남부에서 일어난 브리간디지를 반국가적 반란의 한 형태로 볼 수 없는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운동에 가담한 보르본군 병사들과 관계자들은 현재 진행 중인 이탈리아의 배신자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또한 남부 이탈리아의 합병 원인이 수 사르데냐 왕국의 주요 정치적, 문화적 토대가 같은 지식인의 행위로 발생했던 반면, 국가 정체성이 항상 하위 국가나 소브라 국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지 않았다면, 그는 알베르토 반티가 제안한 다층적 정체성 모델을 믿고 있으며, 따라서 외국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경우에도 신원을 확인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정체성은 그들이 생활하는 어떤 나라에서도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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